아시아의 가능성 넘어, 불가능성까지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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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예술을 읽다 아시아의 가능성 넘어, 불가능성까지 수용해야 ‘귀신 간첩 할머니’…아시아는 여럿의 의미를 갖는 미완의 개념

기사입력2025-08-25 08:43

황재민 미술평론가 (inthebox28@gmail.com) ㅣ다른기사보기

‘글로벌 문화 지형’과 같은 곳에서 한국 혹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수요와 유행이 생겨나면서, 어느덧 한국이라는 게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버린 듯하다. 승전보를 전하듯이 어떤 콘텐츠의 흥행 소식을 알리거나, 빌보드 차트 순위를 전달하는 각종 기사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기에 오히려 되묻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한국은 한국을, 나아가 아시아를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가? 사유할 수는 있는가? 한국은 아시아를 사유하지 못하거나, 드물게 사유하게 되는 그때에는 문화 또는 경제 논리로 정복해야 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갖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깊어진다.

문화학자 김항은 아시아가 쉽게 정의되지 않는 개념임을 지적한 적 있다. 그것은 아시아가 갖는 비대칭적인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아시아는 식민주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만, 모든 아시아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자신이 아시아의 한 부분인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일본은 아시아주의와 근대 초극론을 주장한 바 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탈에 맞서 하나된 아시아가 단결해야 하며, 그러한 아시아의 단결을 일본이 맏형처럼 이끌어야 한다는 식의 담론이었다. 아시아주의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맥락을 가졌다. 이처럼 아시아는 복잡한 위상 속에 놓이는, 실패하고 미끄러지는 개념이었고, 그 결과 언제나 추상화될 수밖에 없는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아시아를 사유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곤 했다.

김항은 아시아가 갖는 이러한 복잡성에 주목하며, 그것이 가능성이 아니라 가능성이 말소되어 온 탈정치화의 흔적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덧붙였다. 이와 같은 불가능성을 간과할 경우, 아시아는 곧 착한 타자들이 선하게 교류하는 평화로운 장소로, ‘착한 타자’로 표상될 수 있다. 복잡성이 표백되어 버리는 것이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귀신 간첩 할머니’(2014) 개막행사, 무형문화재 이상순 만신의 서울새남굿

잠시 시선을 미술로 돌려보자. 2014년에 열린 8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귀신 간첩 할머니’는 여러모로 독특성을 갖는 전시였다. 이전의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는 달리 미디어나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담론에 집중한 전시였다는 점에서 그랬고, 그 담론이 다름 아닌 아시아를 겨누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했다.

귀신과 간첩, 그리고 할머니라는 세 개의 개념어는 아시아가 갖는 지역성과 연관된다. 현대 한국의 풍경을 그릴 때 ‘등산복’ 이미지가 흔히 사용되는 것과 같이, 위의 세 단어는 아시아적인 것의 이미지를 간결하게 호출하는 압축성을 지녔다. 전시되거나 상영된 작품 중 다수는 이러한 이미지와 직간접적으로 공명했다.

예컨대 참여 작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과 크리스텔 르뢰의 ‘아시아의 유령’(2005)에서는 아시아적 귀신의 이미지가 나타났고, 에릭 보들레르가 일본의 좌파 테러조직 연합적군의 역사를 쫓은 작업에서는 간첩과 냉전, 이념의 문제가 함께 떠올랐다. 라디오 프로듀서인 최상일과 작가인 김지연이 함께 제작한 ‘할머니 라운지 – 목소리 저편’(2014)은 최상일이 1989년부터 2005년까지 제작한 라디오 프로그램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소리꾼 기행’ 등으로부터 오디오와 텍스트, 사진 자료 등을 선별하여 아카이브로 재구성한 작업이었는데, 해당 작업은 할머니들의 잊혀진 목소리를 그러모으며 타자들의 목소리를 전시장 안에 불러 세우고자 했다. 귀신, 간첩, 그리고 할머니는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기보다는, 이미지와 아카이브 속에서 흐릿하게, 그리고 불투명하게 드러나며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질문을 확장시켰다.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세 단어는 이처럼 지역성과 연관되지만, 양가성을 갖는 것이기도 했다. 전시 이후 출판된 관련 단행본의 부제와 같이, “근대에 맞서는 근대”를 나타내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영화 속의 스파이는 매력적이지만, 뉴스의 간첩은 무섭다. 제사의 신은 받들어야 하나, 밤에 마주치는 귀는 멀리해야 한다. 할머니는 공경해야 마땅한 존재지만, (…) 추방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한 전시의 문장은 아시아를 아우르는 위의 단어가 아시아적인 것의 표면 뿐만 아니라, 배면까지 담아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시아의 가능성을 넘어, 불가능성까지 수용해야만 비로소 ‘아시아’를 사유할 수 있음을 암시했던 것이다.

‘귀신 간첩 할머니’는 아시아가 본질적이고 단일한 개념이 아닌, 여럿의 의미를 갖는 미완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이는 탈식민주의 문화 담론 속에서마저 늘 ‘착한 타자’로 상대화되곤 했던 아시아의 목소리를 직접 나타내야 한다는 필요성 속에서 불거진 기획이기도 했다. 전시가 끝난지 10년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국제 이벤트에서 아시아가 불려 나올 때마다 ‘귀신 간첩 할머니’가 보여주고자 했던 불가능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누가 ‘아시아’를, 그리고 ‘한국’을 필요로 하는가? 그 필요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아시아가 뚜렷해질 때마다 불가능성은 삭제되고, 그렇게 ‘아시아’ 역시 표상되지 않는다. (중기이코노미 객원=황재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