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형 유급병가’, 전국 사업으로 확대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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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기자수첩 ‘서울형 유급병가’, 전국 사업으로 확대하기를 근로취약계층에 대한 최소한의 휴식권 보장…국가의 의무

기사입력2019-06-04 19:15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서울 청계천로에 위치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 개관식이 열린 지난 30일 박원순 서울시장,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 참석자들이 전시공간을 둘러보고 있다.<사진=뉴시스>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프랜차이즈 분식점을 시작한 A씨, 직장생활 중 가장 좋았던 기억 중 하나는 유급휴가였다고 말했다. 몸이 아프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을 때 활용했던 병가·연차는 자영업자가 된 A씨에게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가게 문을 하루 닫는다는 것은 하루 매출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이는 또 고객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도 있어 장기적인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A씨는 주말은 물론, 명절에도 마음 편히 가게 문을 닫고 쉬어본 적이 없다. 가장 서러울 때는 몸이 아플 때였다. 매일 손님을 맞이해야하는 가게 주인이, 몸이 아프다고 얼굴을 찡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삶의 질이 급격히 하락했다고 A씨는 호소한다.

서울시가 이와같은 복지 사각지대, 일용직·영세자영업자의 마음을 읽었다. 서울시는 지난 1일부터 전국 최초로 ‘서울형 유급병가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유급휴가가 없어 몸이 아파도 치료받지 못했던 일용근로자·특수고용직종사자·영세자영업자 등 근로취약계층이 ‘서울형 유급병가’를 사용하면 연간 최대 11일(입원 10일, 공단 일반건강검진 1일)까지 1일 8만1180원(서울시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정규직노동자의 유급휴가 수혜율은 74.3%인 반면, 비정규직노동자는 그 절반 수준인 32.1%에 불과하다. 유급휴가가 없는 비정규직노동자, 저임금노동자, 자영업자는 질병이 발생해도 소득상실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질병악화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서울형 유급병가<포스터=서울시>

서울형 유급병가를 활용하면, 충분하지는 않지만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줄어든 소득의 일정부분은 보전받을 수 있다. 예컨대 3인가구 월소득 350만원인 택배업종사자가 다리에 다쳐 병원에 입원한 경우 최대 10일간 유급병가지원비 81만1800원을 받을 수 있다.

서울형 유급병가 적용 대상인 특수고용직노동자와 자영업자들은 크게 환영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는 4일 논평을 내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맞춤형 혜택을 제공하는 서울시의 선택적 복지정책은 앞으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자와 노동자의 사회보장 공백을 메우고, 의료빈곤 방지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유급병가 혜택을 받지 못했던 이들에게 몸이 아플 때 쉴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해준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첫발을 뗀 만큼 보완해야 할 문제도 있다. 대리운전기사 등과 같이 소득을 증명하기 어려운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수혜대상으로 편입하기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제도를 수혜 대상자가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널리 알려는 일도 중요하다.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돼,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