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중심 내년 예산안…민생경제의 균형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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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칼럼 AI 중심 내년 예산안…민생경제의 균형추 필요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예산삭감 SOS' 목소리 충분히 반영됐나

기사입력2025-09-03 00: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R&D) “R&D 예산삭감으로 계속과제 연구비가 10% 삭감되었습니다. 올해는 과제 선정률도 급감했습니다. 저 또한 과제가 선정되지 않아 연구 지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매입임대주택 공급이 줄어들어서 1년 안짝이던 입주 대기기간이 2년 이상으로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다리다가 입주를 포기하거나 심지어는 대기 중에 사망한 사례도 있습니다.“

(의료·복지) “공공병원 ‘회복기지원예산’을 대폭 삭감하더니 아예 예산 항목이 없어졌습니다. 공공병원노동자들은 몇 년째 임금체불을 견디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방재정) “중앙정부에서 지차체로 내려오는 비용이 줄었다며 고양시 사회복지 예산에서 장애인활동지원사업 예산이 삭감되었어요.”

(문화예술) “영화진흥위원회 지역영화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습니다. 지역 예술인 및 영화인 복지 예산도 마찬가지고요. 이대로는 지역의 청년 영화인들이 버틸 수 없습니다. 지역을 떠나게 됩니다”

이는 참여연대가 시민들로부터 모은 ‘윤석열 정부 3년 예산삭감 SOS 사례’의 일부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누적된 이 절박한 목소리가 이번 2026년도 예산안에서 과연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이재명 정부는 AI·R&D에는 역대 최대 수준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공공임대주택·공공의료·지방복지·문화예술 등 민생의 기반을 지탱하는 예산은 충분히 채우지 않았다.

성장투자 확대의 명암

지난 29일, 이재명 정부가 2026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총지출 규모는 728조 원으로 전년 대비 8.1% 증가하며 ‘확장적 재정’의 전환을 알렸다. 특히 ‘초혁신경제’라는 기조 아래 AI·R&D 분야에 역대 최대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진 점은 성장 엔진 확보를 향한 이재명 정부의 정책 방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경기둔화 국면에서 적극적 재정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살리겠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성장 투자가 곧바로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AI·첨단산업 분야에 막대한 자원이 집중될수록 다른 영역과의 균형이 더욱 중요한데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성과 중심’ 재정운용은 자칫 민생경제 분야에 대한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어 우려된다. 돌봄, 공공의료, 주거, 소상공인 지원 등은 단기 성과로 가늠하기 어려우나 장기적으로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이기 때문이다. 성과주의적 잣대가 이 영역을 위축시킬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증액의 질에서 한계가 뚜렷한 복지 예산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전년보다 8.2% 증가했지만 질적 개선은 여전히 부족하다. 아동수당은 지급 연령을 1세 확대했지만 급여액은 월 10만 원에 묶였고, 고용보험 미가입자와 같은 사각지대 방안도 부실하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본사업으로 전환됐으나 지자체별 지원 규모가 4~10억 원 수준에 불과해 실효성에 의문이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 기준도 인상되었으나 중위소득과의 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며,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같은 근본적 개선은 여전히 미뤄지고 있다.

공공의료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시설 보강 예산이 포함되었으나, 공공병원 확대는 뒷전이다. 참여연대가 요구한 8,200억 원 규모의 공공병원 확충안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고, 오랜 기간 노동·시민사회가 요구해온 건강보험 법정 국고지원도 지켜지지 않았다. 코로나19 이후 공공의료 인프라 부족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제기되었는데도 정부는 확대 의지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건강보험 법정 국고지원 비율이 수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은 사회안전망 강화가 후순위로 밀어나고 있음을 방증한다. 돌봄 영역에서도 야간 긴급돌봄 수당 신설 등 일부 개선은 있었지만, 돌봄시간 확대와 인프라 확충 같은 구조적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주거 안정, 일부 회복은 했으나 여전히 부족

서민주거 안정 대책도 마찬가지다. 공공임대 확대를 강조했는데도 예산안은 국정과제의 5년간 공적주택 110만 호 공급 계획 이행 수준에 그쳤다. 청년·신혼부부·고령자 등을 대상으로 공공주택 19.4만 호 공급을 목표로 22.8조 원을 편성해 윤석열 정부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 점은 긍정적이나, 반지하 침수 참사나 전세사기 피해 등으로 높아진 공공임대 수요를 고려하면 여전히 부족하다.

참여연대가 요구한 장기공공임대주택 14.5만 호, 약 15조 원 예산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크다. 이재명 정부가 ‘서민 주거 안정’을 국정과제로 내세운 만큼, 단순 회복 수준이 아닌 더 과감한 공급 확대와 장기공공임대 중심의 투자 전환이 요구된다. 주거 안정은 저출생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정책적 우선순위가 높아야 한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뒷전으로 밀려

소상공인과 사회적경제 지원도 미약하다. 경영안정 바우처(25만 원), 사회연대경제 지원 예산이 포함됐지만 각각 0.6조 원, 0.1조 원 수준에 그쳤다. 반면, AI·R&D에는 35조 원 이상이 투입된다. 민생경제와 직접 맞닿아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코로나19와 고금리·고물가 국면을 견뎌온 소상공인에게는 단기성 바우처가 아니라 실질적 회생 대책이 필요하다. 자영업자의 부채 구조 개선, 플랫폼 기업과의 불공정 거래 시정, 지역 상권 활성화 같은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뒷전이다. 현장의 어려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원은 “민생경제 강화”라는 국정과제와도 거리가 멀다.

물론, 눈여겨볼 항목도 있다. 인구감소지역 주민 24만 명에게 월 15만 원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1,703억 원), 24조 원 규모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대학생 천 원 아침밥과 직장인 든든한 한 끼 지원 등은 민생경제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겨냥한 긍정적 신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범사업이나 단년도 사업에 그친다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이다. 지역화폐 확대가 장기 제도로 안착하지 못한다면 보여주기식 정책에 머물 위험이 크다. 민생경제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성과 제도화를 통해서만 안정적 기반을 가질 수 있다.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 위해서는 세제개편 필수적

결국 이번 예산안은 ‘혁신’에 방점을 찍은 반면, ‘민생’의 무게는 가벼워 보인다. OECD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복지지출 비중(‘21년 기준 한국 15.2%, OECD 평균 22.1%)을 끌어올리고, 19%대에 머무른 조세부담률을 정상화해 재정 기반을 확충하는 논의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를 위한 세제개편 논의는 필수적이다. 조세구조를 개편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강화가 불가능하다. 정부와 국회는 공평과세·응능부담 원칙에 따른 중장기 세제개편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라는 국정 비전이 공허한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돌봄, 공공의료, 주거, 소상공인 지원 등 시민 삶의 질과 직결된 분야의 예산이 대폭 확충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예산이 대기업·첨단산업 중심 성장주의로 흐르지 않고,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성장과 불평등 해소’라는 국정 비전이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